1. 내가 생각한 공정은 다른 뜻이었어

공정이란 무엇인가

'공정'

이 두 글자가 지난 수 년 동안 한국 사회를 뒤흔들었습니다. 시작은 2018년 초 평창 올림픽이었어요. '남북 여성 아이스하키 단일팀'을 구성하면서 논란이 불거졌습니다. 당시 정부에서 평창 올림픽을 계기로 남북 화해 무드를 조성하기 위해 북한과 단일팀 구성을 추진했는데, 대상 종목으로 여성 아이스하키팀을 선정했습니다. '남북 평화'라는 대의를 위한 일이었는데도, 크게 논란이 됐어요. 특히 20대와 30대 남성들의 반발이 가장 컸습니다. 단일팀 엔트리를 구성하려면 일부 한국 선수들이 제외될 수밖에 없는데, 지금까지 국가대표로서 올림픽을 준비하고 노력해 온 선수들이 피해를 입는다는 의견이었죠. 당시 정부가 엔트리에 포함되는 선수 수를 늘려 제외되는 선수가 없도록 하면서 논란은 다소 가라앉았지만, 출전 시간이나 출전 기회와 관련된 문제 제기는 계속됐습니다.

20대는 이 사안을 비인기 종목, 메달 가능성이 없는 종목이기에 겪는 '불공정한 대우'로 인식했습니다. "여자 아이스하키가 메달권에 있지 않다"는 이낙연 당시 총리의 발언은 이러한 논란에 기름을 부었어요.

이렇게 등장한 '공정'이라는 단어는 이후 우리 사회의 갈등과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됩니다. 2030세대(주로 언론에서 'MZ세대'라 묶어 부르는)의 가장 중요한 화두가 공정이라는 이야기가 나왔고, MZ세대를 '공정 세대'로 명명하는 이들까지 등장했어요. 공정 이슈와 얽혀 있는 몇 가지 논란이 계속해서 발생했기 때문입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자녀 입시를 둘러싼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벌어진 불공정 논란이 대표적입니다. 이때까지는 사실 기존의 '공정성 이슈'와 크게 다를 바가 없었어요. 기회의 평등, 입시나 입사에서의 공정한 평가라는 큰 틀에서 특혜나 특권이 없어야 한다는 세대 불문의 공정성 인식을 기반에 두고 있었죠. 그러나 '무엇이 공정인가'를 놓고 세대별로, 성별로 약간씩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게 아닐까 의심이 드는 일이 발생하기 시작했습니다.

모두에게 다른 공정의 의미

바로 인천국제공항공사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문제(일명 '인국공' 논란)를 둘러싼 '공정 논란'입니다. 기존의 공정성과 다른 부분이 논쟁의 화두가 됐어요. 20~30대, 특히 20대 남성들이 생각하는 공정이란 무엇인지 깊은 고민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극심한 근로 조건 차이를 만드는 불공정성이 더 문제인지, 시험을 통해 정규직을 '쟁취'한 이들과 동등하거나 유사한 지위를 '시험 없이' 갖게 되는 불공정이 더 문제인지 논쟁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죠. 비정규직에 대한 부당한 처우가 불공정과 불평등의 핵심이라고 생각했던 30대 중반 이후의 세대, 특히 진보성향이 강하다고 평가받는 40대와 50대는 이러한 논란을 제대로 예측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면서 모두가 공정이라는 단어를 진정 같은 의미로 사용하고 있는 것인지 근본적인 의문이 제기됐습니다. 우리는 연령대에 따라, 성별과 각자가 속한 계층에 따라 공정이라는 단어 자체를 다르게 사용하고 있었던 겁니다. 추후 데이터와 사례로 검증하기 전에 간략하게 살펴보면, 20대 남성들에게 공정이란 '모두가 완전히 동등한 조건에서 오직 실력과 능력으로 경쟁하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20대 여성들에게는 여성으로서 느끼는 차별이나 위험이 제거된 상황 속에서 온전히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었어요. 30대 중후반 이후 세대, 즉 전기 밀레니얼 세대와 X세대에게는 전반적으로 '부당한 대우와 불평등의 해소'가 공정의 핵심이었습니다. 그 이전 세대에게는 주로 고전적이고 추상적인 의미의 '기회의 평등'이나 '결과의 평등'을 놓고 벌이는 논쟁의 연장선상에 공정이라는 단어가 놓여 있었습니다.

같은 한국어 단어를 세대별로, 때로는 성별로 묘하게 다른 뉘앙스로, 다른 맥락에서 활용하고 있었던 겁니다. 게다가 공정은 세대, 성별을 넘어 경제적 계급 혹은 계층별로도 다른 의미로 쓰이고 있었습니다. 2021년 봄 대기업의 '성과급 논란' 을 통해 알 수 있었어요. 당시 SK하이닉스, 현대자동차, LG 등 유수 대기업의 젊은 직원들은 성과급 책정과 차등 지급의 기준을 놓고 '보상의 공정성'을 문제제기했습니다. 이때 벌어진 공정 논란은 MZ세대 전체의 문제가 아니라 '기득권 MZ', 즉 고연봉의 좋은 직장에서 정규직으로 일하는 이들의 '개인적인 불만'을 중심으로 한 논란이었습니다. 이들이 말한 공정은 극심한 불평등에 시달리는, 부당한 처우를 받고 있는, 지방의, 고학력이 아닌, 비정규직의 MZ세대에게는 그저 '먼 나라 이야기'일 뿐이었기 때문이죠.

이처럼 모두가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한 마디씩 자신의 의견을 덧붙이던 화두조차 세대, 성별, 심지어 계층에 따라 다른 의미로 받아들이고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왜 우리는 같은 단어를 다른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는 걸 눈치채기 어려웠을까요?